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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검은사제들과 마르바스 (1편)

오늘은 2015년 54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검은 사제들>과 그 모티브가 된 성경에 기록된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강동원이 사제복을 입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흥행을 예고했지만 정작 이 영화를 살린것은 타짜와 추격자 그리고 황해로 흥행보증수표가 된 김윤석도 아닌 악마에 빙의된 소녀의 역을 맡았던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박소담의 정말 미친 연기였다. 

지금 다시봐도 소름돋는 이 장면은 그 유명한 영화 엑소시스트의 엑소시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데, 빙의된 소녀를 지배하고 있는 악마의 정체, 즉 그 이름을 밝히려는 사제(김윤석)와 빙의된 소녀(박소담)와의 영적 싸움에서 영화의 절정에 이른다. 끝내 그 정체를 들어내고 포기한듯 빙의된 소녀의 입에서 나온 악마의 이름은 '마리바스'

 

김 신부가 내리누르고 있는 갈고리 사이로 검은 형체가 존재를 드러냈다. 영신의 상반신 길이만한 그것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얼굴과 목이 온통 사자 털로 뒤덮여 있었다. 김 신부는 연기 사이로 붉게 충혈된 그것의 눈을 마주보았다. 강렬한 분노로 가득 찬 그것은 새까만 악마였다. 악마는 얼굴을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리며 신음했다.

"Dica nomen tuum quod vocatiris tu!" (말하거라, 네가 불리우는 이름이 무엇이냐!)
"마르... 바스."
검은 사제들 中

 

 

악마의 이름은 '마리바스'

끝내 밝혀진 악마의 정체는 '마리바스'였다. 검은색 갈기를 가진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악마 '마리바스'는 지혜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놋쇠항아리에 봉하였던 72악마 중 하나로 36개 암마군단을 지휘하는 서열 5위의 강력한 악마로 알려져있다. 영화에서 구마사제의 피부를 부패시키거나 벌레와 쥐떼를 불러 들이고 빙의된 소녀가 피를 토하고 얼굴과 목이 검은색 사자털로 뒤덮힌 모습으로 변한 것은 모두 '마리바스'에 대한 묘사였다. 

 

결국 정체가 드러난 '마리바스'는 소녀의 몸에서 축출되어 준비된 돼지의 몸속으로 빙의해 한강에 던져져 최후를 맞게 된다. 근데 왜 봉인 매개로 사용된것이 돼지였을까? 혹시 카톨릭의 장엄구마예식의 일부였을까? 

 

아니다. 엑소시스트, 컨저링 등 엑소시즘을 다룬 수 많은 영화나 카톨릭 장엄구마예식에 관한 공식적인 어떤 문헌에서도 '돼지'를 퇴마된 악마를 봉인시키는 매개로 사용하는 예는 없다. 

 

이에대한 해답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 <검의 사제들>의 모티브가 된 사건, 아니 나아가 중세로 부터 이어진 카톨릭 구마의식의 원형이 되는 사건은 신약성경 마가복음(마르코 복음) 5장 1~15절에 기록된 일명 '거라사의 광인' 이야기이다. 

 

 

거라사의 광인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레기온)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마가복음 5장 1~15절>

 

예수가 만났던 이 귀신들린자에 대해 마태복음(마태오복음) 과 누가복음(루카 복음서)에서 추가 설명을 하고 있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마태복음 8장 28절>

 

"그 더러운 영이 그를 여러 번 사로잡아, 그가 쇠사슬과 족쇄로 묶인 채 감시를 받았지만, 그는 그 묶은 것을 끊고 마귀에게 몰려 광야로 나가곤 하였다." <루카 복음서 8장 29절>

 

이 거라사의 광인은 악마의 지배를 받아 자신을 해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까지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쇠사슬과 족쇄로 묶었지만 악령의 초인적인 힘으로 끊어버리고 무덤과 산속에서 밤낮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쇠사슬로 귀신들린자를 묶어놓는 행위는 예전 '기도원'같은 곳에서 귀신을 쫓아낸다며 많이 행해졌었다. 그리고 주먹이나 손바닥, 심하면 몽둥이 같은 것으로 귀신들린자를 물리적으로 때렸었는데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었다. 그런 행위의 근간에는 빙의된 악령의 기분을 나쁘게 하여 쫓아낼 수 있다는 주술적 민강신앙이 있었던 것 같다. 기도원에서 '치유'라는 명목으로 목사님들은 육체적 정신적 환자들의 머리와 등, 가슴을 강하게 밀치거나 때리는 행위를 하였으며 '엑소시즘'은 그보다 더 강한 강도로 시행되었다. 

 

사실 구마행위를 하다 피구마자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발생할 경우 오늘날 심각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기때문에 카톨릭 안에서도 한동안 비공식적으로 이뤄져왔다. 그러다 오늘날 많은 오컬트 영화에서 행해지는 카톨릭 구마행위가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된 배경이된 사건이 생긴다. 영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The Exorcism Of Emily Rose, 2005>의 실제 주인공인 독일여성 아넬리 미셸은 67번의 구마의식을 받았으나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고 끝내 숨지게 되었고 이에 카톨릭 구마사제들이 법정에 서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는 악령을 쫓아내기는 했지만 소녀는 살리지 못하게 되고 구마사제(김윤석)는 경찰에 연행된다. 

 

 

 

 

악마의 이름은 '레기온'

그리고 예수는 이 거라사의 광인에게 오늘날 엑소시즘의 핵심처럼 이해되는 "악령의 이름 밝히기"를 시전한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레기온)니"

 

'레기온'은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의 가장 큰 부대단위로 4000~6000명으로 이뤄졌다. 그를 지배하던 악령은 하나가 아니라 수천마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무력으로 이스라엘을 압제하였고, 솔로몬의 성전을 무너뜨려 오늘날 통곡의 벽만을 남겨놓았으며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수천년간 디아스포라하게 만들었던 로마의 무력적 통치의 상징과도 같은 '레기온'이었다. 물론 성경은 훗날 이 사건의 정치적 해석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듯 "그에게 많은 마귀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사족을 달고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아예 악령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있다. (2편에서 계속)